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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목씨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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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물과 종훈

    사천목씨 상징물과 종훈 소개입니다.

    상징물

    1997년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에 세워진 이 조형물은 높이 3.6m, 폭 1.2m의 조각품으로서 『화목(和睦) 그리고 탄생(誕生)』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김지삼 조각가의 작품이다.

    청동으로 된 윗부분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형상을 나타내 우리 문중이 화목한 가운데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미래에 더욱 웅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가운데 별과 원을 두 사람이 안고 있는 것은 ‘후손들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라’는 바람과 목씨가 미래를 이끌어갈 등불이 되며 영원토록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이 조각품을 받치는 전면의 명문에는 고려 시대부터 융성하기 시작한 우리 가문의 내력을 담은 '사천목씨의 근원'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우리 목문의 자랑'이라는 주제의 글이 담겨 있다.


     

    사천목씨의 근원 – 전면

    우리 목씨는 선대가 경남 사천(泗川)에 살면서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리 화목하고 돈독하여 화목할 목(睦) 자로 성(姓)을 얻게 되었고, 본관을 사천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계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씨가 본관이 서로 다르나 목씨의 본관이 하나뿐인 것은 그 뿌리가 한 분에게서 이어졌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목씨의 시조는 고려조에 무관을 지내신 낭장동정공 휘 효기(孝基)이시고, 2세 합문지후공 휘 덕창(德昌)은 고려 원종 10년에 서북 방면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하다 순국하시어 영주군(靈州君)에 봉(封) 해지신 분이며, 3세 직제학공 휘 준평(俊平)은 비서성 판사, 보문각 직제학을 지내신 분이다.

    우리 목문은 고려 말부터 가문이 융성하여 중앙 관계에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조선조에서도 많은 정치가와 인재를 배출하여 당당히 명문 대가의 위치에 올랐다. 시조로부터 6세까지의 묘소는 북한에 있어 7세조의 묘소가 있는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선영 내에 단비(壇碑)로 모시고 있다.


     

    우리 목문의 자랑 - 후면

    고려조에서 무신 가문으로 성망이 높았던 우리 목씨는 단본으로 사람 수는 많지 않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32명이 문과 급제를 하였으며 정승과 판서를 비롯하여 당상관(堂上官) 20여 명을 배출함으로써 명문대가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으니 이는 우리 문중의 큰 자랑이다.

    특히, 11세조 현헌공 휘 세칭(世秤)은 중종 때 명현으로 이름이 높았고 아들이신 두일당공 휘 첨(詹)은 대사간·이조참판·도승지 등을 지내시고 1591년(선조 24) 77세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셨다. 그의 아드님 매계공 휘 서흠(叙欽)은 개성유수·예조 참판·지중추부사를 역임하시고 1650년(효종1년) 79세 때 기로소에 들어가셨으며 영의정으로 추증(追贈)되셨고 충정(忠貞)이라는 시호를 받으셨다. 또 이조·호조·예조·형조판서를 지내시고 이후에 좌의정을 지내신 그의 아드님 수옹공 휘 내선(來善)께서 1688년(숙종14년) 72세에 기로소에 들어가심으로써 할아버지 두일당공, 아버지 충정공에 이어 연이어 3대가 기로소에 들어가는 ‘가문의 영광’을 이루셨는데 이는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서 우리 문중이 유일하다.

    기로소는 반드시 문과급제를 거쳐 정 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내고 나이가 70세 이상의 원로만이 들어갈 수 있는 국가 최고의 원로 예우 기관으로서 조선시대 관리들은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다.


    종훈(宗訓)

    가정에는 가훈이 있고 학교에는 교훈, 회사에는 사훈이 있듯이 사천목씨종친회도 종훈을 두고 있다. 1990년대 초 제정된 종훈은 우리 목문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조상을 받들어 모시고 공경하자는 『숭조경모(崇祖敬慕)』 이다. 오늘의 나, 우리를 있게 해 주신 조상님들을 어찌 우러러 받들지 않을 수 있는가?

    둘째, 종친 간에 서로 화합하여 친분을 두텁게 하자는 『친화돈목(親和敦睦)』 이다. 우리 사천목씨는 성을 얻을 당시의 맥이 오늘까지 이어져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뿌리가 같다. 그러니 어찌 친화 돈목하지 않을 수 있는가?

    셋째, 『종반창달(宗班暢達)』 이다. 종원들이 협력하여 진보와 발전을 기하자는 의미로서 우리 종친회가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