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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파소개

    사천목씨 계파소개입니다.

    직장공파 감찰공파 장악원정공파 현헌공파 해주공파 사부공파 괴산공파 참군공파 주부공파 찬성공파

    직장공파

    직장공파 파조 11세 휘 세준 묘(오른쪽)와 배위 의인 안동 권씨의 묘 (양주시 만송동 산107-1)

    직장공파의 파조는 승훈랑 행 상의원 직장(承訓郞 行 尙衣院 直長)을 지내신 11세 휘 세준(世準, ? ~1527)으로 종손(宗孫) 집안이다.

    파조 휘 세준의 현손(玄孫, 5대손)인 15세 성균관 진사 휘 경익(慶益)의 큰 아드님으로 첨지중추부사를 지내신 16세 휘 종화(宗和)의 후손인 첨정공종중(僉正公宗中),

    둘째 아드님 16세 휘 성화(聖和)의 후손인 직강공종중(直講公宗中),

    셋째 아드님 16세 휘 시화(是和)의 3남인 17세 휘 사함(泗涵)의 후손인 사함공종중(泗涵公宗中), 4남인 17세 휘 사구(泗龜)와 그의 아드님으로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된 18세 휘 처협(處協)의 후손인 사복시정공종중(司僕寺正公宗中),

    사헌부 집의(執義)에 추증된 14세 휘 립(雴)의 후손인 집의공종중(執義公宗中) 등 모두 5개 종중으로 나뉘어 있다. 직장공파 종원은 1,400명 정도로 목문 전체의 20%를 차지하며 주로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감찰공파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에 증직된 11세 휘 세규(世䂓), 둘째 아드님 12세 겸(謙), 손자 13세 휘 사흠(思欽)으로 이어지는 후손들을 감찰공파라 하며.

    11세 휘 세규의 셋째 아드님 12세 휘 해(諧), 손자 13세 휘 승조(承祚)로 이어지는 후손들을 장악원정공파라 칭하는데 이는 13세 휘 승조공께서 장악원정(掌楽院正)에 추증되었기 때문이다.

    두 파는 감찰공파로 내려오다가 13세 때에 분파(分派)되었으나 모든 종중 행사는 함께하고 있다. 두 파의 종원 수는 500여 명 정도로 목문 전체 종원의 7%를 차지하며, 주로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앞쪽) 감찰공파 파조 11세 휘 세규와 배위 증 의인 광주 이씨의 합장 묘

    동두천시 지행동 산11
    ◆ 감찰공파 13세 휘 사흠과 배위 숙부인 순흥 안씨 합장묘(우측)
    ◆ 배위 숙부인 한양 이씨 묘(좌측)


    (우측) 13세 선전관공 휘 사흠, 배위 숙부인 순흥 안씨 합장묘
    (좌측) 배위 숙부인 한양 이씨 묘
    (동두천시 지행동 산11번지)


    장악원정공파


    장악원정공파 13세 휘 승조, 배위 증 숙인 용인 이씨 합장묘
    (동두천시 지행동 산15번지)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에 증직된 11세 휘 세규(世䂓), 둘째 아드님 12세 겸(謙), 손자 13세 휘 사흠(思欽)으로 이어지는 후손들을 감찰공파라 하며.

    11세 휘 세규의 셋째 아드님 12세 휘 해(諧), 손자 13세 휘 승조(承祚)로 이어지는 후손들을 장악원정공파라 칭하는데 이는 13세 휘 승조공께서 장악원정(掌楽院正)에 추증되었기 때문이다.

    두 파는 감찰공파로 내려오다가 13세 때에 분파(分派)되었으나 모든 종중 행사는 함께하고 있다. 두 파의 종원 수는 500여 명 정도로 목문 전체 종원의 7%를 차지하며, 주로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장악원정공파 12세 휘 해, 배위 안동 권씨의 합장묘
    (동두천시 걸산동 산9번지)


    현헌공파


    현헌공파 파조 11세 휘 세칭, 배위 증 정부인 한양 조씨 합장묘
    (남양주시 평내동 산9번지)


    현헌공파(玄軒公派)의 파조는 10세 휘 희안(希顔)의 넷째 아드님이신 11세 휘 세칭(世秤, 호 현헌, 1487~1551)이다.

    현헌공은 1519년(중종 14) 진사시(進士試)에 장원을 하였고,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었으나 응시하지 않았고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향리에서 지인들과 시주(詩酒)를 즐기며 세상과 멀리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공을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존숭하였으며 돌아가신 후 후손들이 현달(顯達)하였으므로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셨다. 아드님은 도승지, 대사헌, 대사간, 충정도관찰사, 형조·이조 참판, 한성부 좌·우윤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강화도에서 일의군(一義軍)이란 의병을 조직한 두일당공 휘 첨(詹, 1515~1593)이다.

    현헌공파는 다른 계파에 비하여 후손들이 많으므로 선대부터 공의 손자들 호를 따서 하담공댁, 충정공댁, 고석공댁, 다산공댁 등 4개의 댁으로 구분하여 왔다. 현헌공파의 종원수는 3천여 명으로 목문 전체의 34% 정도를 점하고 있다.

    하담공댁(荷潭公宅)
    현헌공의 외아드님 휘 첨(詹)의 장남 13세 휘 수흠(守欽, 호 하담, 1548~1593)의 후손을 하담공댁이라 부른다. 하담공은 종5품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지냈고 좌승지에 추증되셨다. 조선 후기 정2품 지중추부사로 기로소에 들어간 19세 휘 만중(萬中)은 하담공의 6대손이다.
    하담공의 후손은 목문 전체의 2% 정도인 100여 명으로 주로 서울·경기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

    충정공댁(忠貞公宅)
    두일당공 휘 첨(詹)의 2남으로 충정(忠貞) 시호를 받으신 13세 휘 서흠(叙欽, 자 순경, 호 매계, 1572~1652))의 후손들이다. 충정공은 문과 급제자로 관직은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아드님과 손자들께서 귀현(貴顯)하게 되었으므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충정공의 큰 아드님으로 연천(漣川) 현감을 지낸 휘 처선(處善) 후손인 연천공종중, 둘째 아드님 휘 기선(嗜善, 호 붕계) 후손인 붕계공(朋溪公)종중, 셋째 아드님 휘 겸선(兼善, 호 용재) 후손인 용재공(容齋公)종중, 사헌부 감찰을 지낸 넷째 아드님 지선(志善)의 후손인 감찰공(監察公)종중, 좌의정을 지낸 다섯째 아드님 수옹공 휘 내선(來善)의 후손인 좌의정공(左議政公)종중으로 나뉘어 있다.

    연천공종중은 김해(金海)소종중, 서산(瑞山)소종중, 직강공(直講公)소종중 등 셋으로, 좌의정공종중은 온양, 안산, 원주, 동두천 진사공종중 등 넷으로 나뉘어 있다. 충정공댁 종원수는 2천여 명으로 목문 전체의 30%를 차지하며, 서울, 경기도 등 수도권, 부산, 경남, 충청도 등에 거주하고 있다.

    고석공댁(孤石公宅)
    두일당공 휘 첨(詹)의 셋째 아드님으로 과거 급제하여 도승지, 함경도 관찰사, 호조참판 등을 지낸 휘 장흠(長欽, 자 우경, 호 고석, 1572~1641)의 후손들을 고석공댁이라고 칭한다.

    고석공의 장남으로 경상감사를 지낸 14세 병산공(甁山公) 휘 성선(性善, 호 병산, 1579~1647), 장남 15세 휘 창조(昌朝), 전설사 제검(典設司 提檢)을 지낸 16세 휘 중정(重廷)의 후손을 전설사공(典設司公)종중이라 부르며,

    금천(현 과천) 현감을 지낸 둘째 아드님 14세 휘 이선(履善, 호 이지, 1619~1694), 공주목사를 지낸 장남 15세 휘 창우(昌遇),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를 받은 장남 16세 휘 중신(重信)의 후손을 중신공(重信公)종중,

    휘 창우의 4남으로 영조 때 효자정려(孝子旌閭)를 하사받은 휘 중진(重鎭)의 후손을 정문공(旌門公)종중이라고 부른다.
    고석공댁 종친들은 주로 강원도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으며 종원수는 500명 정도이다.

    다산공댁(茶山公宅)
    두일당공 휘 첨(詹)의 넷째 아드님 휘 대흠(大欽, 호 다산, 1575~1638)의 후손들이다. 다산공은 문과 장원 급제를 하셨고 우리 문중 최초로 사가독서(賜暇讀書)의 명을 받으신 분이다. 승정원 부승지·우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문집으로 「다산집」이 있다.

    다산공의 큰 아드님으로 성균관 대사성, 황해감사, 우승지 등을 역임한 14세 남간공 휘 행선(行善, 호 남간, 1609~1661)의 후손인 남간공(南磵公)종중과 셋째 아드님으로 사천(泗川) 현감을 지낸 14세 휘 윤선(胤善)의 후손인 윤선공(胤善公)종중이 있다.

    남간공종중 15세 취원공 휘 창명(昌明)은 숙종 때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냈다. 종원수는 300여 명으로 목문 전체의 4% 정도를 차지하며 전남과 수도권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해주공파


    해주공파 파조 11세 용강공 휘 세구, 배위 증 숙부인 평산 신씨 합장묘
    (양주시 만송동 산109-1번지)


    해주공파는 휘 희안의 다섯째 아드님으로 용강(龍岡) 현령(지금의 남포시 용강군)을 지낸 11세 휘 세구(世矩, 1492~?)를 파조로 하며 외아들인 휘 전(詮, ?~1594)이 해주판관을 하였으므로 후손들을 해주공파라고 부른다.

    사부공파


    사부공파 파조 10세 휘 희증, 배위 정경부인 양천 허씨 합장묘
    (양주시 만송동 산107-1번지)


    사부공파의 파조는 중종 때 기묘현량(己卯賢良)에 천거되었으며 진원(珎原, 현 장성군) 현감을 지낸 10세 휘 희증(希曾, 호 노옹, 1464~1542)이다. 기묘록 속집(己卯錄 續集)에 ‘사부(師傅) 목희증은 조행(操行)이 있었으며 성질이 질박(質朴)하고 유순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공을 사부공이라 호칭하고 그 후손들을 사부공파라고 부른다.

    사부공파는 선전관청 선전관(宣傳官)을 지내신 13세 휘 광흠(光欽)과 아드님 시윤(時尹) 후손들인 선전관공종중, 13세 휘 중흠(重欽)과 선천부사(宣川府使)를 지내신 14세 시량(時亮)의 후손들인 선천부사공종중으로 나뉘어 있다.

    특히 선전관종중 19세 휘 안중(安中)의 세 아드님 20세 휘 인재(仁㦳), 인배(仁培), 인회(仁會) 3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현헌공파 충정공 3형제(서흠, 장흠, 대흠) 이후 두 번째로 우리 목문을 빛내신 분들이다.

    괴산공파


    9세 휘 철경과 배위 증 숙부인 전의 이씨 합장 묘소
    (구로구 궁동 산6번지)


    괴산공파(槐山公派)의 파조는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사간원, 사헌부, 병조 등에서 벼슬을 하고 종3품 괴산(槐山)군수를 지내신 9세 휘 철경(哲卿, 호 오정, 1440~1504)이다.

    괴산공파는 파주종중, 장단종중, 기타로 나뉘어 있다. 현재 440여 명의 종원이 경기도를 중심으로 수도권에 살고 있으나, 예전에 황해도 연백(延白) 일대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직도 이북에 많은 종원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참군공파


    (위) 8세 참군공 휘 계남과 배위 숙인 여주 이씨 합장묘
    (아래) 왼쪽부터 9세 휘 철중과 배위 영인 개성 이씨 합장묘
    10세 휘 희건과 배위 의인 장평 정씨 합장묘
    11세 휘 지화와 배위 정부인 단양 우씨 합장묘
    13세 휘 홍언과 배위 증 숙인 안동 김씨 합장묘


    참군공파(參軍公派)의 파조는 7세 참판공 휘 진공(進恭)의 둘째 아드님인 8세 휘 계남(繼男)으로 생졸연월일은 미상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건공장군 행 훈련원 참군(建功將軍 行 訓練院 叅軍)을 지내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참군공파라 부른다. 공의 묘소가 공주 유성 덕락(德樂)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참군공 이후 후손들이 충청도에 뿌리 내리고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군공파는 13세 휘 종의(從義)의 둘째 아드님 14세 휘 내선(乃善)의 후손인 내선공종중,
    13세 홍한(弘僩)의 큰 아드님으로 관찰사를 지내신 14세 휘 형선(馨善)의 후손인 관찰사공종중, 휘 홍한의 둘째 아드님 14세 휘 흥선(興善, 자 군선)의 후손인 군선공(君善公)종중으로 나뉘어 있다.



    참군공파 재실 묵정재

    참군공파 종원수는 목문의 약 9%인 600여 명으로 주로 대전, 충청남도 등지에 살고 있다. 2016년 후손들이 참군공 휘 계남의 묘소를 충북 영동 묵정리(墨井里)로 옮기고 선영 입구에 재실 ‘묵정재(墨井齋)’를 지어 선조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주부공파

    주부공파(主簿公派)의 파조는 7세 휘 지류(之柳)이며 생졸년은 미상이나 돌아가신 날은 9월20일로 알려져 있다. 무관으로 훈련원 주부(訓練院 主簿)를 지냈으므로 후손들을 주부공파라고 부른다.

    특히 12세 휘 계종(啓宗, 1508~?)은 정 2품 자헌대부 지중추부사(資憲大夫 知中樞府事)를 지냈으므로 그 후손들을 주부공파 지중추부사공종중이라 칭한다. 공께서 노년에 경남 창녕에 내려와 사셨기 때문에 많은 후손들이 아직도 경상남도 일대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주부공파 종원 수는 현재 620여 명으로 목문의 9%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찬성공파


    찬성공 휘 인길 묘소

    찬성공파(贊成公派)의 파조는 6세 찬성공(贊成公) 휘 인길(仁吉, 1324~1398))이다. 무신(武臣)인 공은 고려 공민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한 1등 공신으로 사성군(泗城君)에 봉해졌고, 우왕(禑王)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라는 높은 벼슬을 지냈으므로 찬성공이라 호칭한다.

    묘소는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수청리에 있는데 남쪽에 남아있는 선조들의 묘소 중 가장 오래된 묘소이다.

    중앙종친회에서는 찬성공파와 함께 2017년 6월 공의 묘역 정화 사업을 완료하였다. 현재 200여 명의 후손이 주로 경남과 부산 일원에 거주하고 있다.